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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도움말

[나의 웹퍼블리셔] 내게 알맞는 보금자리? _2편

by 뇽키 2024. 6. 24.

[나의 웹 퍼블리셔] 내게 알맞는 보금자리? _1편

[나의 웹퍼블리셔] 첫 단추을 끼워버린 인턴십 성공기[호기심 ]빠른년생이였던 저는 고등학교 졸업 후 휴학 없는 스트레이트 재학으로 남들보다 1년 일찍 대학을 졸업하였습니다.22살의 졸업을

xoxoble.tistory.com



 
업무가 시작되고 몇 차례의 프로젝트를 통해 회사가 SI기반으로 운영되고
프로젝트 서포팅을 하는 포지션임을 알게 되었어요.
프로젝트 투입 전에는 늘 어떤 설명도 없는데다,  연차에 비례해서 투입하는 것이 아닌 타이밍과
단가에 맞는 태깅이되는 장기말 같은 느낌이였습니다.
투입 후에 빠르게 상황에 대한 판단을 끝내고 작업분량에 대해서 대응과 협의를 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했습니다.
오히려 역으로 회사에 보고하는 체계였죠. 
운이 좋아 팀으로 들어가지 않는 한 늘 PL로의 포지션으로 다녔기에 책임감이라는 큰 역량이 필요했습니다.
당연히 고객사와의 커뮤니케이션도 중요했고 이러한 것들도 회사에서 평가되었습니다.
영업적으로 인정을 받은 일도 있었어요.
시간이 지나며 업무적인 스킬 뿐만아니라 부수적인 이해들도 차츰 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한가지 더 필요했던 것은 요구하는 작업의 스펙트럼이 매번 달랐기에 파트별 R&R의 기준도 필요했습니다. 
적절함을 유지한 채 업무 강도에 따라서 유연하게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기도 하였습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스스로의 발전과 책임감으로 임하였기 때문에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는 회사의 보호는 최소한으로 받는게 낫다라는 판단을 하였어요. 
동료들 모두 다들 이겨내며 일하는 착한 직장인이였습니다. 
모든 프로젝트에 보안서약서를 쓰기에 자세한 설명은 어렵지만 주니어인 제게 이해하기에 어려운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스터디를 적극적으로 진행하는 선배들도 회사를 위해 무리한 업무를 하고 있었어요.
그리하여 후배들의 프로젝트 상황을 백프로 이해할 수 없었고 서포팅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후배들도 이를알곤 큰이슈로 가지 않는다면
스스로가 책임감 있게 해결하는 식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대표님이 인복많다는 소문이 꽤나 많았어요ㅎ)
2년차 까지는 철야를 밥먹듯하는 3D직종임을 몸소 느껴보았어요.

그시절 좋은 사람들과

이렇게 업무강도가 높은 회사에 있어보니, 에이전시쪽의 생태계를 빨리 알게되었어요.
제가 다녔던 회사는 "프리의 성지" 라고 별명 지어진 곳이였어요.
개인의 역량이 최대한으로 발전되기에는 최적의 장소였습니다.
기술적으로 큰 이슈가 있으면 선배들의 서포트를 받을 수 있었고, 앞선 경험이 있는 동료의 도움을 받아
프로젝트에 온보딩 할 수 있는 건강한 구조로 운영 되었습니다.  
어느정도 연차가 쌓여가니 동료간 선의의 경쟁을 하며 역량을 늘려가게끔 되는 구조더군요.
아무래도 같은 직종의 사람이 30명 있다보니 서로가 서로의 경쟁자였죠.
 
 
 

건강히 잘 성장한 지금의 우리들

 
 
그때는 심적으로 힘들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제게 맞는 보금자리가 아니였나 싶습니다.
대표님이 인복이 많다고 표현했지만, 애초에 회사를 창립하며 이러한 체계를 만들어 놓은 것 자체도
대표님의 방향임에 틀림없었습니다.
저의 첫 보금자리의 선택은 참 알맞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