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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도움말

[나의 웹퍼블리셔] 첫 단추을 끼워버린 인턴십 성공기

by 뇽키 2024. 6. 22.

[호기심 ]
빠른년생이였던 저는 고등학교 졸업 후 휴학 없는 스트레이트 재학으로 남들보다 1년 일찍 대학을 졸업하였습니다.
22살의 졸업을 하게된 저는 대학교 막바지 1년간 주말알바로 일했던 한복집 경험 덕분에
웨딩 박람회를 다니다 쥬얼리샵으로 스카웃(?) 되었습니다.
이래 저래 제게 좋은 도움은 되었지만 고향에서의 삶이 무채색으로 느껴지게 되었어요.
하루는 무작정 서면의 교보문고로 향했습니다.
그리곤 언젠가 티비에서 보았던 검은 화면의 영어들이 멋져 보였던 기억이 나서 html 웹표준에 관련된 책을 사버렸어요
 

고향에서의 일상을 털어낸 저는,
2013년 겨울 서울로 향했습니다.

 
 
[사명감?]
웹 퍼블리셔라는 직업선택.
애초에 멋져서 선택했던 첫걸음이였지만
실은 퍼블리셔의 귀중한 직업윤리가 무척이나 고귀했습니다.
웹접근성이라니 장애인 차별법이라니..
이렇게나 귀한 일을 제가 할 수 있음에 가슴이 뛰고 뿌듯한 날들을 보낼 수 있었어요.
웹접근성 붐이 일었던 초창기 스크린 리더기나 휴대폰 테스트등의 업무는 꼼꼼히 하려면 무궁무진했고
끝나지 않는 업무이지만 제가 가진 사명감은 컸습니다.
요즘은 웹접근성으로 하는 코딩이 필요없을 정도로 다양한 개발 방법론들이 많기에 슬며시 사그라들고 있는듯 합니다. (지금은 또 디자인 퍼블리싱이 결합된 디블리셔과정이 끝물이라는 소문이..)
직업적인 필요성이 줄어들어서 아쉽지만, 그래도 윤리와 고귀한 정신만은 보존되었기에 조금은 안도해봅니다.
 
타지에서 고생할 저를 생각한 어머니는 국비지원을 알아볼 필요도 없이 컴퓨터 학원에 등록 해주셨어요.
그때 당시 핫했던 웹퍼블리셔 전문 과정을 들었고 이때 학원과 무제한 수강에 대한 약속을 하였었습니다.
미술학과였던 저는 컴퓨터가 익숙하지 않았어요.
소중한 저의 새로운 꿈과 도전을  빨리 포기 하지 않기 위한 장치가 필요했습니다.
1월부터 9월까지 포스팅 재택 알바와 병행하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았답니다.
 
[첫 단추를 잠그며]
그렇게 영차영차 살아가다 학원에서 같은 과정을 들었던 친구에게 인턴공고를 전달 받았어요.
친구는 웹 디자인 파트로, 저는 웹퍼블리싱 파트로 각각 지원하였습니다.
친구와 함께 한 덕분인지, 서로의 힘이 되어주며 실무 면접 1주일을 경험한 후 인턴쉽에 합격하였습니다.
마케팅, 웹디자인, 해외영업, 인테리어, 영상, 법무팀 등 다양한 인턴동료들과 재미있는 2개월을 마쳤어요.
경쟁도 하고 화합도 하는 상생의 2개월 이였습니다.
다신 돌아오지 않을 어린시절 인턴 경험은 너무나도 소중하네요.
 

잘들지내니..?

 
 다채로운 인턴 생활에서 대학교를 다니는 기분에 우르르 다니며 즐겁게 보냈습니다.
결국 꿈의 기업에도 나오던 복지 좋은 저의 첫회사는.. 지금은 망해버렸지만
덕분에 즐거운 시간들을 보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개발자 과장님 한분과 기획자 대리한분, 퍼블리셔 인턴한명이 포함된 웹디자인팀에서
복지몰과 찍어내기식의 브랜드 쇼핑몰 여러개를 구축했습니다.
그 당시는 어려웠지만 지금 생각하면 난이도 별 한개도 안되는 업무였어요.
소극적이지만 할건 열심히 임하는 성격 탓에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았던 귀한 시간이였어요.
다시 한번 감사함을 표현해봅니다.
 

러버덕을 닮은 햇병아리 박제

 

  그렇게 저는 , 팀에서 선물해 주었던 라미 만연필 하나와  추억을 안고   

 

이력서 한줄로 추가 될 첫 회사를 떠나왔습니다.   

 
 

[나의 웹 퍼블리셔] 내게 알맞는 보금자리? _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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